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많은 시민들은 구급 대원들과 함께 부상자들에게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하지만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오면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다급하게 찾는 안타까운 상황이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 전반에 CPR 교육에 관한 중요성이 부각된 계기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 수영 교육이 정착됐듯, 이태원 참사 이후 교육 당국은 학생들에게 CPR,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전상훈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해 경북대병원, 미국 하버드 의대 메사츄세스병원 등에서 근무했고, 이후 분당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 및 원장 등을 역임했다.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오랜 시간 CPR 교육에 골몰하던 그는 지난 2019년 교수창업으로 헬스케어 스타트업 '테트라시그넘'을 세웠다. 이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메타CPR' 교육 장비 등을 선보였다.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 교수는 "전문적인 장비를 통해 CPR 교육 결과가 빅데이터로 체계화되기 때문에, 향후 효과적인 CPR 교육 방향을 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CPR은 호흡이나 심장 박동이 멈췄을 때 응급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호흡을 유지하고 혈액 순환을 유지해 주는 응급처치법이다.
심정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4분'에 불과하다. 4분 이상 뇌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으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어 치명적이다. 즉 CPR의 핵심은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환자를 발견하는 즉시 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나 직장에서 실시하는 CPR 교육은 대부분 집체 교육, 동영상을 이용한 교육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다른 주요 국가보다 한참 뒤처진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20년 일반인 심폐소생술 시행률'(병원 도착 전 '근무 중인 구급 대원 및 의료인'을 제외한 일반인에 의해 심폐소생술이 시행된 급성심장정지 환자의 비율)은 26.4%로 영국(70%), 일본(50.2%), 미국(40.2%) 등의 국가보다 크게 낮았다.
테트라시그넘의 교육 장비 '메타 CPR'의 특징은 가상현실(VR) 고글, 그리고 각종 센서가 내장된 마네킹을 통해 실제로 CPR을 해본 것과 같은 교육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마네킹에는 ▷호흡량 ▷가슴 압박 위치 ▷가슴 압박 깊이 및 속도 ▷의식 확인 ▷기도 확보를 감지할 수 있는 5개의 센서가 내장돼 있다. 이 센서들을 토대로 CPR 결과가 항목별로 점수화되고, 클라우드에 데이터로 저장된다.
CPR을 실시하는 상황은 교실, 가정 등 다양한 환경으로 설정할 수 있고, 가상 환자의 성별도 선택 가능하다.
전 교수는 "우선 고글을 쓰면 가상현실에서 테트라시그넘의 인공지능(AI) 강사가 등장해 미국심장학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CPR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한다"며 "이어 행인이 쓰러지는 상황이 펼쳐져 CPR을 실시하면, AI 강사가 센서로 수합되는 데이터를 토대로 '조금 더 깊게 눌러라',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식으로 세밀하게 지도를 해 준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AI 강사 없이 홀로 CPR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점수가 매겨지는데, 이 점수는 CPR을 실시한 본인에게는 물론 관리자에게도 전달이 된다. CPR에 있어 어떤 점이 부족한지 데이터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전체 과정을 마무리하기까지 40~50분이 소요된다.
그는 "CPR은 꼭 맨살에 할 필요는 없다. 너무 두꺼운 옷이라면 벗겨야겠지만, 티셔츠 정도는 관계없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상태여도 괜찮다"며 "제세동기를 사용할 때도 옷을 피해 패드를 붙이면 된다"고 말했다.
◆CPR 교육으로 안전한 지역 사회 만들어야
현재 국내에서 '메타CPR'은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중앙보훈병원을 비롯해 LG CNS, KT와 같은 대기업에도 보급돼 있다. 국외에서는 영국 맨체스터대학병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어린이병원 등에서 CPR 교육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김천소방서에서 테트라시그넘의 장비를 교육에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CPR 교육을 위해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다.
전 교수는 "'메타CPR'은 키오스크가 포함돼 있고, 크기도 크다"며 "이 때문에 센서가 달린 마네킹과 헤드마운트 등만 있으면 교사가 학교에서 전체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다른 장비가 곧 나온다"이라며 "학교에서 사용할 경우 클라우드로 관리되는 데이터를 통해 전체 학생들의 전반적인 CPR 교육 상황을 평가하기도 용이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6개월, 1년 등 CPR 교육 빈도에 따라 수행 능력에 차이가 있을 것인데, 이런 데이터를 통해 교육 간격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안전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CPR 교육 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미국의 킹스카운티라는 지역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굉장히 열심히 실시하자, 환자 생존율이 크게 향상된 사례가 있다"며 "대구에서도 CPR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욱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현정 기자 hhj224@imaeil.com
입력 2022-11-23 06:30:00 수정 2022-11-23 0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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